61 전통적으로 기제사는 음력으로 돌아가신 날에 지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공식적으로 양력을 쓰고 있고, 또 양력이 더 정확하니까 양력으로 날짜를 찾아서 지내는 것이 더 합리적이 아닙니까?
61 전통적으로 음력으로 해왔고, 현재도 음력이 없어진게 아니고 존속하니까 음력으로 지내고 있는 것입니다. 귀하의 의견처럼 음력은 3년에 1개월이 틀리고 달의 大小도 일정하지 않아 문제점이 많은데, 양력은 4년에 1일만이 틀리며 그것도 2월에 국한해서 못박았고, 달의 大小도 일정하기 때문에 양력이 더 정확한게 사실입니다. 기제사란 돌아가신 날에 지내는 제사이기 때문에 음력이든 양력이든 그 달의 그 날짜에 지내면 되겠지만 보다 계절 적으로 걸맞는 양력으로 지내더라도 망발은 아닙니다.
62 축문에 제사 달의 초하루와 제삿날의 일진을 쓰는데 근래 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 같습니다. 특히 양력으로 제삿날을 차릴 때는 더욱 그렇게 생각되는데 어떻습니까?
62 옛날의 문헌이나 역사기록들을 보면 날짜를 숫자로 안쓰고 간지(干支)로 기록한 경우가 많습니다. 그 습관과 관례에 따라 간지를 쓴 것으로 이해됩니다. 그리고 택일해서 지내는 제례는 대개 '丁'일이나 '亥'일을 택일하도록 했고, 상중(喪中)의 우제(虞祭)나 졸곡(卒哭) 등도 일진의 강유(剛柔)를 따져서 했기 때문에 일진을 쓰는 것이 합리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엄격히 말해서 기제사의 일진을 쓰더라도 실제 돌아가신 날의 일진과 일치하지 않기 때문에 문제점으로 남는 것도 사실입니다. (예 : 실제 돌아가신 날의 일진은 男子였는데 금년의 제삿날의 일진은 壬 일수도 있다. ) 그래서 음력으로 제사를 지낼 때는 전통방식에 의해 간지를 쓰더라도, 양력으로 제사를 지낼 때는 간지를 안써도 무방하다고 생각됩니다.
63 어떤 사람은 제사때나 상가의 빈소에서 절을 할 때 두 번 반이라고 합니다. 반 번의 절을 하려면 어떻게 합니까?
63 그런 말을 더러 듣게 되는 데 절의 종류에 반절(半拜)은 있어도 횟수에 반번은 있을 수 없습니다. 절의 종류에 반절(半拜)이란 아랫사람의 절에 대해 어른이 답배(答拜)한 경우 정중하게 하지 않고 간략하게 하는 경우입니다. 그러나 반번은 없습니다. 생각컨대 남자의 배례에 읍(揖)을 하는 것을 그렇게 표현하거나 아니면 부인들이 절을 한 다음에 공경하고 사양하는 뜻으로 약간 허리를 굽히는 것을 그렇게 말하는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읍이 나 허리를 굽히는 것은 간략한 禮의 표시이지 절(拜)은 아닙니다. 혼동없으시기 바랍니다.
64 저는 돌아가신 어머니의 산소를 조상의 산소 옆으로 옮기려 합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어머니께서 어른께서 살으시는 근처로 이사를 하더라도 반드시 어른께 인사를 여쭐 것입니다. 산소를 옮길 때도 그냥 옮길 수는 없지 않습니까? 그리고 어머니의 지금 산소를 팔 때와 새로 산소를 뫼신 뒤에 아무런 의식도 행하지 않는다면 도리에 어긋날 것 같습니다. 어떻게 해야 됩니까?
64 참으로 훌륭한 생각이십니다. 귀하의 건전한 상식과 도리 대로하는 것이 바로 예절입니다. 우리의 전통예절은 건전한 상식이며 당연히 해야 할 일들을 어떻게 하는 것인가를 오랜 생활관습에 의해 정립한 것들입니다. 조상의 산소옆에 다른 산소를 쓸려면 간략하게 제수를 차리고 '동강조선묘고사(同岡祖先墓告사)'를 하고, 새로 모신 곳에서도 간략한 제수를 차려 '일우축문(一虞祝文)'을 지어 읽어 산소 쓰는 일이 끝났음을 고하는 것입니다. 귀하의 건전한 상식과 전통예절은 이렇게 일치합니다.
65 저의 아버지가 돌아가신지 며칠 후면 49일이 됩니다. 주 위에서 49일제(祭)를 지내야 한다고 하는데 전통예절에도 49일제가 있습니까?
65 일반적으로 말하는 49일제란 '제(祭)'가 아니고 '재(齋)'입니다. 즉 죽은지 49일만에 지내는 제사란 말이 아니고 불교에서 사람이 죽어 49일이 되면 '일곱번의 생사를 거쳐 각 과보를 감지하고 三界·六道에 가서 태어난다'고해 7일씩 7번이 되는 49일에 불교의식을 행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전통적인 의례절차인 제례로서는 '49일제'가 없고 불교의 종교의식으로 '49일재'가 있습니다. 혼동이 없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제가 아니고 재이므로) 49일재는 가정에서 치르는 것이 아니고 사찰에서 불교의식으로 치릅니다.
66 저의 아버지께서 생전에 손자 보시기를 무척 기다리셨는 데 돌아가신 후에야 제가 아들을 낳았습니다. 돌아가신 아버지께 어떤 방법으로 이 사실을 알려드려야 합니까?
66 갸륵하신 효성입니다. 어찌 아들을 낳은 일 뿐이 겠습니 까? 집안에서 있었던 큰 일은 조상에게 고하는 절차가 '유사즉고(有事則告)'라고 정해져 있습니다. 원래는 사당을 뫼신 큰 집에서 고하는 축문(告문)을 지어 고했는데 현대는 사당이 안계시지만 조상의 위패(신위)를 임시로 뫼시고 간략한 제수를 차린 다음 사실대로 고할 수 있습니다. 귀하의 경우도 기제사를 지낼 때같이 신위를 뫼시고 간략한 제수를 차린 다음 아이를 데리고 "누구의 아내 00성씨가 0월 0일 아들을 낳았기에 고하며 뵈옵니다"고 고하시면 됩니다.
67 돌아가신 아버지의 회갑이 가까웠습니다. 어머니께서는 아버지의 옷을 지어 태우고 잔치를 해야 한다고 하십니다.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67 古禮에 의하면 돌아가신 父母의 생신에 관한 의식이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이제인데 일반적으로 음력 9월 15일에 사당에서 父母의 위패만 모시고 지내는 제사로써 원래의 유래는 처음 '이제'를 지낸이의 아버지의 생일이 9월 15일이었다는 데에 연유합니다. 또 하나는 사당에 '생신제고사(生辰祭告사)'를 하는 것인데 사당에 뫼신 모든 신위의 생신제로써 李退溪 선생은 禮가 아니라 했고, 金沙溪 선생과 宋尤庵 선생은 인정의 발로라고 했습니다. 효성이 지극한 자손이 조상의 생신에 잊지 않고 의식을 갖는 일이 나쁘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예를 들어 저명한 분의 탄신 百주 행사를 사회적으로 치르기도 하는데 돌아가신 자기 아버지의 회갑을 그냥 지나치기에는 인정 상 차마 어려운 일입니다. 마땅히 '이제' 지내듯이 위패(신위)를 뫼시고 가까운 친척이 모여 제사를 지내며 추모한 다음 함께 음복하면 자연히 추모하는 경건한 잔치로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의복을 지어 태우는 일은 속설(俗說)일 수는 있으나 전통의례에는 없는 일입니다.
68 직장에서 사무실을 이전하는데 고사를 지내기로 했습니다. 의당 축문을 읽어야 하는데 한문서식을 알지도 못할 뿐 아니라 무슨 뜻인지도 모릅니다. 마침 글 솜씨가 있는 동료직원이 있어 우리말로 축문을 지을까 하는데 괜찮겠습니까?
68 나쁜 생각이 아닙니다. 현행되는 각종 축문이나 고사가 한문식으로 된 것은 그런 서식이 정립된 시기가 한문전용시대였고, 그렇게 써서 읽어도 알아들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한문서식이 된 것입니다. 그러나 한글세대의 제례행사에 한글로 된 우리말 축문을 지어 읽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라고도 할 것입니다. 다만 제사나 고사의 취지가 분명히 담기고 조상이나 만물을 주재하는 천지신명에게 공경을 다하는 내용이면 되겠습니다.
69 문화민족일수록 전통문화가 많다고 들었습니다. 특히 예 절에 있어서는 더욱 그렇다고 생각됩니다. 그런데 근래의 시중에 나오는 예절 책을 보면 '예의 바르다'고 정평이 있던 우리집의 방법과 너무도 다릅니다. 아무리 가가례(家家禮)라지만 이럴 수가 있습니까?
69 좋은 질문입니다. 우리나라는 家家禮라고 해서 집집마다 또는 고장마다 예절에 차이가 있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현대는 그 家家禮를 방치해 둘 수만은 없습니다. 높은 산이나 깊은 강에 막혀서 왕래가 수월치 못해 사투리가 생길 정도로 생활양식이 서로 다르던 때와는 다릅니다. 당연히 어느 쪽이든 통일된 의식을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이런 때에 "우리집에서는 이렇게 한다"고 고집하면 통일이 안됩니다. 논리적인 근거에 의해서 모두가 따라 올 수 있는 방법이어야 하겠습니다.
70 근래 방송이나 신문잡지등의 보도에 보면 제상을 진설하는데 있어서 西쪽에 밤, 東쪽에 대추를 놓는 방법과 대추 밤 감 배의 순서로 놓는 방법이 섞여서 소개됩니다. 전통의식을 배워서 하고싶어도 어떤 방법이 옳은지를 몰라 당황하게 됩니다. 시원한 해답을 주십시오.
70 매우 절실한 문제입니다. 사실 제례에 있어서 가가례라는 양상이 두드러진 부분이기도 합니다. 대추 밤 감 배, 즉 棗栗枾梨의 순서를 주장하는 경우의 이유는 대추는 씨가 하나니까 임금이고 밤은 한송이에 세톨이 들었으니까 3정승이고 감은 씨가 여섯 개니까 6판서고 배는 씨가 여덟 개니까 8도 관찰사에 해당해 벼슬의 높이에 맞춰 임금 정승 판서 관찰사의 순으로 놓는다고 합니다. 이 주장이 옳다고 가정하면 개인의 제사에 임금을 상징하는 대추를 쓴다는 것이 불경스러우며, 官制가 바뀌면 그 비유가 맞지 않을 수도 있어 불합리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반면에 밤을 西쪽 대추를 東쪽에 놓고 붉은 것을 東쪽 흰 것을 西쪽에 놓는다는 東棗西栗과 紅東白西의 주장은 한문적인 논리에 의한 것입니다.
밤은 서쪽의 나무(栗)라고 쓰며, 두렵다(慄)는 뜻이 있고, 神主도 밤나무로 깎으므로 陰방, 즉 西쪽에 해당되고, 대추의 붉은 색은 하늘 즉 陽을 뜻하며 혼례에 폐백을 대추로 하는 의미가 아침 일찍 일어나서 부지런히 한다는 뜻이므로 東西南北중 陽방은 東쪽이고, 또 東쪽에서 해가 뜨므로 부지런하다는 의미와 합치해 대추는 東쪽에 해당되며, 제사음식은 현란한 색깔을 피하므로 붉은 대추가 놓인 東쪽에서부터 붉은 색의 과실을 놓고, 흰밤이 놓인 西쪽에서부터 흰색의 과일을 놓는다는 紅東白西가 되는 것입니다. 두 가지의 주장을 비교할 때 東棗西栗, 紅東白西가 棗栗枾梨보다 더 논리적임을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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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 제수 진설법을 보면 머리와 꼬리가 있는 생선등을 어떻게 놓는가에 문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누구는 東頭西尾라 하고, 어떤 이는 西頭東尾라고 합니다. 또 생선을 놓을 때 등과 배를 어느 쪽이 신위 쪽을 향하게 놓는가도 문제인 것 같습니다. 어떻게 해야 맞는 것입니까?
71 분명히 말해서 권위있는 禮書에는 고기나 생선을 놓는 위 치는 정해졌지만 머리와 꼬리, 등과 배를 어느 쪽을 향하게 한다고 정해진 곳을 아직 보지 못했습니다. 그렇다고 아무렇게나 원칙이 없이 놓을 수도 없는 문제라 여러 가지 俗說이 있어 다르게 행해지고 있습니다. 비록 禮書에는 정해진 데가 없지만 전통예절의 총본산인 성균관의 석전 대제에서는 東頭西尾, 즉 머리가 東쪽이고 꼬리가 西쪽이 되게 진설합니다. 그 이유는 신위가 北쪽에 계시니까 東西로 길게 놓아야 할 텐데 東이 陽方으로 위이기 때문에 머리를 東쪽으로 가게 놓는 관습이 정립된 것으로 믿어집니다. 등과 배는 배가 신위쪽으로 가게 놓는 것이 일반화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등은 뒤이며 밖이고 배는 앞이며 안이므로 앞과 안쪽을 신위쪽으로 하는 것이 타당해서입니다. 또 등을 보이면 나가는 것이고 배를 보이며 들어오는 것이므로 배를 신위쪽으로 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72 우리의 전통예절은 격식이 중요시되는 것 같습니다. 특히 제례는 조상을 추모하는 정성이 있으면 된다고 생각되는데 왜 격식이 그렇게 중요시됩니까?
72 당연합니다. 인간이 하는 표정, 언어, 행동이 모두 격식에 의해서 이뤄져야 상대가 속마음을 알아차리게 됩니다. 격식이란 그 사회에서 공통된 방식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아침에 잠에서 깨어 잠자리를 걷고 소제하고 세수하고 면도하고 밥먹고 옷을 챙겨 입고 신을 신고 대문을 나설 때까지의 절차를 순서대로 기록한다면 祭禮절차보다 더 복잡하겠지만 복잡하다거나 까다롭다고 하지 않고 일상적으로 수월하게 행합니다. 그 이유는 격식이랄 수 있는 절차를 잘 알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의례절차를 복잡하다거나 까다롭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 절차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정성스러운 사람은 격식을 알아서 그대로 행합니다. 우리가 먹는 상차림도 밥, 국, 수저, 간장, 김치 찌개등을 놓는 자리가 격식이 있습니다. 우리가 양식을 먹을때도 스푼 나이프 포크를 쥐고 쓰는 법등 격식을 따라서 행합니다. 그런데 왜 조상을 위하는 제상의 차림은 아무렇게나 해야 된다고 생각하며 모든 의식 절차를 안지켜도 된다고 생각합니까? 그것은 격식을 모르는 사람의 변명이고, 그런 변명을 하는 사람은 정성이 모자라다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73 신혼여행에서 돌아 올 때에 신랑과 신부가 친정과 시댁중 어디로 먼저 가야 할까요? 이 문제로 옥신각신하는 예가 많습니다.
73 친정으로 먼저 가면 "이제 우리집 사람인데 왜 친정부터 가느냐?"고 시댁에서 괘씸하다고 말하고, 시댁으로 먼저 가면 "평생 살 것인데 친정좀 다녀가면 안되는냐?"고 친정에서 서운해 합니다. 古禮대로 親迎禮를 하면 신랑집에서 禮를 올리니까 문제가 없고, 전통관습대로 하면 신부집에서 禮를 올리고 첫날밤을 차린 뒤에 시댁으로 오는 于禮를 하니까 그 절차가 확실한데 신식혼례에는 신랑댁이나 신부댁이 아닌 어중간한 예식장에서 혼인예식을 하고 첫날밤을 치르기 전에 신혼여행(첫날밤)을 떠나니까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첫째 분명히 말해서 혼인예식이란 궁극적으로 첫날밤, 즉 合宮이라고 해서 男女가 몸을 합치기 위한 절차입니다. 따라서 첫날 밤을 차리는 격인 신혼여행은 우리 전통관습에 의할 때 신부댁에서의 절차적 행사라 할 것입니다.
둘째는 남녀가 합치는 첫날밤은 여자에게 있어서 중대한 변혁적 행사이므로 그 후에 같은 여성이며 閨房의 禮를 가르친 어머니와의 대화가 절실한 것이니 그 기회가 있어야 합니다. 셋째는 아무리 혼수를 미리 시댁으로 보냈다 하더라도 비밀스럽고 자질구레한 신변잡품들은 신부가 직접 가지고 가야 할 것이기 때문에 친정에 있을 것입니다. 넷째, 딸을 마지막 보내고 생소한 시댁에 보내면서 아무리 예물을 보냈다고 하더라도 어떻게 그냥 빈손으로 보낼 수 있겠습니까? 이상과 같은 연유로 해서 신혼여행에서 돌아오는 신랑과 신부는 신부댁으로 가서 한밤을 지낸 뒤에 시댁으로 들어가는 것이 합리적입니다.
74 男女간에 어른에게 절할 때 평소에는 한번 씩 하고, 제사 지낼 때는 남자는 두 번, 여자는 네 번 하는데, 回甲때는 몇 번씩 해야 합니까? 한번씩 하자니 너무 가벼운 것 같고, 제사때와 같이 하자니 산 어른에게 제사의 절을 할 수 없어서 그럽니다.
74 그런 질문이 많습니다. 古禮에보면 절을 많이 할수록 극 진한 공경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절의 기본횟수는 남자는 陽이기 때문에 최소 陽數인 1회이고 여자는 陰이니까 최소 陰數인 2회입니다. 그것은 전통혼례에서 신랑은 2번 신부는 4번절하지만 각기 기본횟수인 신부가 2번, 신랑이 1번의 절을 두 차례 하는 것으로 이해됩니다.
제사의 절은 극진한 공경일 뿐 아니라 상대가 陰府로 가신 귀신이니까 남자가 陰數의 절을 하기 위해 2번 하고, 그것이 기본 횟수의 배이기 때문에 여자도 기본횟수의 배인 4번을 하는 것입니다. 回甲도 평소와 다른 儀式이며 극진한 공경을 나타내는 것이므로 남자는 2번, 여자는 4번 해야 할 것입니다. 폐백때의 절도 신부는 4번씩 하게 됩니다. 그러나 절을 받으실 어른이 절의 횟수를 줄이라고 명하시면 말씀에 따라 하는 것이 禮에 맞는 것입니다.
75 男左女右란 말을 많이 쓰고 실제 좌석배치에도 원칙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 左右란 左右로 위치를 잡아야 할 자신들의 左右입니까? 예를 들어 신랑·신부가 설 때나, 회갑에서 부모가 앉을 때 자기 들의 左右인가, 아니면 손님이 볼 때의 左右인가 말입니다.
75 매우 중요한 질문입니다. 실제로 누구의 左右인가 혼동이 되고 있습니다. 당사자의 左가 보는 이의 右가 되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左右란 당사자의 左右도 아니고 보는 이의 左右도 아닙니다. 禮節에 있어서 '누구의' '어디의'라고 기준을 정해서 左右를 말할 때는 당연히 그 특정기준의 左右이기 때문에 혼동이 없지만, 특정기준이 없이 左右라고 하면 문제가 생기기 때문에 특정 기준이 없을 때의 일반적 기준이 정해져 있습니다. 그 일반적 기준은 '上座'입니다. 左右에서의 左는 東이고 右는 西를 의미하며 上座는 北쪽이기 때문에 당연한 논리입니다. 上座가 北이라는 것은 冠婚喪祭의 西禮에서 공통된 것이고, 그 상좌의 左가 東이며 男子이고, 상좌의 右가 西이며 女子입니다. 따라서 回甲잔치에서는 헌수를 받는 당사자가 앉는 자리가 上座이기 때문에 父母가 상좌에 앉으면 左측인 東에 父가 앉고 右측인 西에 母가 앉게 됩니다. 혼인예식에서는 병풍을 친곳, 즉 주례석이 上座이기 때문에 주례의 左측인 東에 신랑이, 주례의 右측인 西에 신부가 서야 합니다.
전통혼례에서 신랑의 자리는 東쪽이고 신부의 자리는 西쪽이라고 명시되어 있고, 이때의 東西는 上座의 左측이 東이고 右측이 西가 되는 것입니다. 제례에서는 神位를 뫼신 곳이 上座이기 때문에 신위의 左가 東이고 右가 西입니다. 따라서 男子자손은 신위의 左 측인 東쪽에서 北향해 서고, 女子자손은 신위의 右측인 西쪽에서 北향해 서는 것입니다.
76 요사이 명절에 한복을 입는 사람이 많아서 흐뭇합니다. 그런데 한복을 입고 구두를 신은 것을 보면 양복입고 갓을 쓴 것 같아 개운치 못합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76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한복에는 미투리나 짚신을 신어야 걸맞는 다고 생각하기가 싶군요. 그러나 우리가 양복을 입기 전, 그러니까 한복이 유일한 우리의 의상일 때도 서민들은 미투리나 짚신 아니면 나막신을 신었지만 사대 부나 여유있는 상류층에서는 가죽신도 신었고, 가죽신에 징을 박은 진신도 신었습니다. 옛날의 가죽신과 지금의 구두가 모양은 약간 다르지만 가죽신이라는 데는 다를 것이 없습니다.
77 금년 신정에 TV를 보았더니 각 정당이나 단체의 신년하례식이 방송되는데 한복두루마기에 목도리를 두른채 의식에 참석한 저명인사들이 많았습니다. 목도리도 우리 한복의 정장에 속하는지 궁금합니다.
77 목도리는 방한하는 장신구이지 통상복장의 일부는 아닙니다. 비단 한복뿐아니라 양복을 입었을 때도 실내에 들어가면 목도리를 끌러야 깍듯한 예절이라 하겠습니다. 신년하례식 같은 의식행사에 한복에 목도리를 두른채 참석한다면 방한장비를 한채 의식에 참석한 것이 됩니다. 당연히 실내나 의식행사에서는 목도리를 풀러야 합니다.
78 곧 설이 됩니다. 아랫사람이 어른에게 절을 하기 위해 "절 받으세요", "앉으세요"라고 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게 옳은 것인지 궁금합니다.
78 좋은 질문입니다. 절은 공경의 뜻을 나타내는 동작입니다. 자기가 공경하는 대상에게 공경의 동작을 하면서 어른보고 "절 받으라", "앉으라"라고 수고를 시켜서는 아니됩니다. 공경해야 할 어른을 뵈옵는 즉시 공경의 예를 올리는 것입니다. 어른이 앉았으면 더욱 좋겠지만 서 계시면 어떻고, 누워 계시면 어떻습니까? 절을 받기 위해 수고를 시키지 말고 절을 올리는 것이 옳습니다.
79 저는 아직 20대 초반의 신입사원입니다. 지난 신정에 중 학교 때 각별히 사랑해 주시던 선생님과 직장의 아버지같은 상사에게 세배를 갔었습니다. 선생님과 상사가 모두 무척 반기며 고마워 하셔서 보람을 느꼈습니다. 그런데 두 분이 모두 저의 절을 그냥 앉아서 받으셨습니다. 그래도 되는 것인지요?
79 절을 하는 예절도 중요하지만 절을 받는 예절도 깎듯 해야 합니다. 아무리 어릴 때 가르친 제자라도 성년이 되어서 하는 절에는 반드시 반절로 답배를 해야 합니다. 직장의 상급자도 하급자가 미성년이 아닌 성년이라면 그 절을 답배해야 합니다. 직장의 상급자도 하급자가 미성년이 아닌 성년이라면 그 절을 답배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관습에 의하면 '얘' '너' '해라'하며 절을 그냥 받던 아랫사람이라도 관례(성년례)를 올리고 나면 '자네' '하게'를 하며 반드시 그 절을 맞아 주었습니다. 근친관계가 아니면 성년의 절은 반드시 답배를 해야 합니다.
80 제가 알기에는 명절의 차례가 설 한식 추석 등 세 차례라 고 생각됩니다. 한식과 추석의 차례는 산소에 가서 지내는 것이 일반화되었는데 설의 차례도 산소에 가서 지내야 하지 않겠습니까?
80 茶禮란 조상에게 명절의 특식을 먼저 드리는 제례입니다. 그러니까 설에는 떡국, 추석에는 송편, 한식에는 화전을 올린다고 하겠습니다. 전에 사당에 조상의 위패를 뫼시던 때는 사당에서 차례를 지내고 산소에는 그냥 성묘만 하는 것이 일반적인 방 법이었고, 더러는 어떻게 산소에 빈손으로 가겠느냐면서 간단한 제수를 준비해서 산소에서도 지냈습니다. 결국 자손의 정성이 지극하면 두 번 차례를 지내는 결과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사당이 없어지고 산소만 계시니까 집에서는 지내지 않고 산소에서만 지내는 것이 근래의 풍속입니다. 한식은 언 땅이 녹을 때이고, 추석은 초목이 자라고 장마끝이라 산소의 안위가 궁금해 반드시 성묘를 해야 합니다. 그래서 산소에서 차례를 지내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그러나 설은 몹시 추운 때라 성묘하기가 마땅치 못하며 설의 특식인 떡국은 국물이 있고, 뜨겁게 끓여야 하기 때문에 산소에서는 마련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설의 차례는 집에서 신주, 지방, 사진등 위패를 모시고 지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