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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이야기

북미의 커피하우스

북미의 커피하우스

1668년에 기록된 문헌에는 북미 최초의 커피는 설탕(Sugar) 또는 시나몬(Cinnamon)을 곁들여 마셨다고 한다.

그 후 커피하우스는 뉴욕(New York), 필라델피아(Philadelphia), 보스턴(Boston) 등의 도시에 문을 열었다.

미국 최초의 커피하우스가 1691년 보스턴(Boston)에 문을 열었는데 런던 커피하우스와 굿테리지 커피하우스이다.

가장 유명한 그린(Green) 드레곤(Dragon) 커피하우스에서는 1773년 보스턴 차()사건이 계획되었다.

 

[보스턴 차 사건](Boston Tea Party)은 영국의 지나친 세금 징수에 반발한 미국의 식민지 주민들이 인디언으로 위장해

1773 12 16일 보스턴 항에 정박한 에 실려 있던 () 상자를 바다에 버린 사건이다.

이 사건은 미국 독립 전쟁의 불씨를 일으키는 데 일조한 것으로 여겨져 왔다.

사건의 배경

1765년의 인지조례와 1767년의 타운센드 조례는 의회 대표가 없는 식민지에도 과세하기로 한

영국의 결정과 관련하여 식민지 주민들의 반발을 불러 일으켰다.

영국에 저항하던 대표적인 인물인 존 핸콕은 영국 동인도 회사의 중국산 차에 대한 불매 운동을 조직하였고,

곧 판매량은 320,000 파운드(145,000 kg)에서 520 파운드(240 kg)로 급감하였다.

1773년에 이르러 동인도 회사의 적자는 크게 불어났고,

창고에는 언제 판매될지도 모르는 찻잎들이 쌓여갔는데,

이는 존 핸쿡을 비롯한 밀수업자들이 관세를 물지 않고 차를 수입해 판매했기 때문이었다.

영국 정부는 차 조례를 통과시켜 동인도 회사가 식민지에 직접 차를 판매할 수 있도록 하였다.

그리하여 동인도 회사가 영국 업자들과 밀수업자들보다 싼 가격에 차를 판매할 수 있게 되어,

영국 상인들과 밀수업자들은 파산을 면치 못할 정도로 큰 피해를 보았다.

미국의 대부분의 항구에서는 동인도 회사의 차를 실은 배의 하역을 거부하였으나,

보스턴에서는 영국 정부가 임명한 총독인 토머스 허친슨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영국 군함들의 호위 아래 차들을 하역하기 위한 계획이 세워졌다.

사건의 전모

배에 실려 있던 차가 하역되기 전날 저녁,

새뮤얼 애덤스의 주도하에 세 집단으로 구성된 50여명의 보스턴 주민들('자유의 아들들')

올드 사우스 교회에서 출발하여 그리핀 부두로 향했다.

그들은 당시 모호크족으로 변장했었는데, 이는 자신들의 신분을 위장하여 징계와 처벌을 면하기 위함이었다.

 다트머스, 엘리너, 비버 등 세 척의 배에는 수 백 상자의 차가 실려 있었다.

(원래는 네 번째 배가 있었으나 보스턴에 닿기 전 코드 곶에서 좌초되었다)

 변장한 주민들은 각각의 배에 올라 차 상자를 부수기 시작했다.

오후 9시까지 세 척의 배에서 총 342개의 상자(당시 £10,000의 가치)가 부수어져 바다로 던져졌다.

주민들은 신발을 벗고, 갑판을 청소하였고,

각 배의 일등 항해사들에게 '자유의 아들들은 차 상자만을 부수었을 뿐'이라고 이야기하도록 만들었다.

그들은 격렬히 맞섰던 엘리너의 일등 항해사 데이비드 매튜를 제외하고는 거의 아무런 저항을 받지 않았다.

 이튿날, 그들은 전날 부수었던 자물쇠 하나를 고치기 위해 수리공 한 명을 보냈다.

1808년에 영국의 로이드 커피하우스를 모방한 5만 달러 상당의 7층짜리

호화로운 커피하우스의 탄생으로 보스턴은 세계에서 가장 크고, 비싸며, 웅장한 커피하우스가 있는 도시가 되었다.

그러나 이 커피하우스의 규모는 당시 세계 최대를 자랑하였으나 10년 만에 불타버렸다.

 

뉴욕에서는 커피가 아침식사의 주 음료로서 빠른 속도로 머스트”(맥주의 일종)를 대신 하였으며,

커피 생두를 판매하는 메인 마켓이 1683년에 문을 열었다.

월리암 펜은 펜실베니아에서 뉴욕으로 커피를 주문하였다.

1696, 뉴욕에 최초로 킹스 암즈 커피하우스가 문을 열었고,

1730년에는 브로드웨이(Broadway)에 익스체인지(Exchange) 커피하우스가 세워져 무역센터 역할을 하였다.

이 커피하우스는 훗날 머천다이즈(merchandise) 커피하우스에 병합되고,

다시 1784년에 뉴욕은행으로 변신하여, 1790년 최초로 주식을 판매한 장소가 되었다.

뉴욕의 월 스트리트와 워터가에 있는 톤틴은 10년 동안 뉴욕 주식 거래의 중심이 되었다.

 

초기 미국의 세 번째 대도시인 필라델피아(Philadelphia)에서는

1700년에 최초로 예 커피하우스가 문을 열면서 런던(London) 커피하우스와 경쟁하였다.

미국 커피하우스들은 유럽과 달리 진보주의자들(공화주의, 자유주의)보다 보수주의자들이 많이 애용하였다.

간혹 공공건물이 없는 도시에서는 재판이나 의회장소로 사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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