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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이야기

다방

 

암울했던 일제 식민지시대를 지나 우리 민족은 815해방을 맞이했지만, 그 기쁨은 비극적인 동족상잔의 625전쟁으로 얼마 가지 못했다.

1950 625전쟁은 커피가 지금까지와는 다른 모습으로 대중화하는 계기를 마련했는데, 인스턴트 커피의 등장이 바로 그것이다.

원래 전쟁 같은 비상시에 간편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개발된 인스턴트 커피는 625전쟁을 치르면서 미군 PX를 통해 불법적으로 암거래되었고,

여기에 막대한 외화 유출 현상이 나타나자 정부는 국내 커피업체의 설립을 허가하였다.

이는 커피가 나라 안에 널리 퍼지게 되는 계기를 마련하여 다방의 인기를 더 높여 주었다.

1930년대에 이르러, 다방의 범람현상이 나타나 골목마다 다방 간판을 구경할 수 있었다.

공식 기록에 의하면, 여급의 숫자는 70여명에 이르게 되었고 경성 역의 티 룸이나 백화점의 옥외 카페 등도 이때 활발하게 생겨났다.

일반적으로 다방 안은 모나리자 상과 같은 포스터가 걸린 벽과 낡은 목조계단, 그리고 빛 바랜 융단 의자의 내부장식,

동의자에 앉아 차를 마시고 담배를 태우고,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 축음기에서는 흘러나오는 노래로 설명될 수 있다.

축음기에서는 주로 재즈가 흘러나오거나 클래식이 나왔고 메뉴 판에는 가배라고 불렀던 커피나 깔피스(가루삐스)등이 적혀 있었다.

이 당시 커피는 숯 또는 탄불을 이용해 커피가루가 든 약탕기나 냄비 등으로 끓여낸 것이 대부분이다.

커피가 쓴맛의 대명사가 된 것도 끓이면 끓일수록 탄 맛과 쓴 맛 밖에 남지 않음을 몰랐던 무지의 탓이다.

손님은 젊은 인텔리 계층들이 모였으며 어떤 이들은 한잔에 10-15전 정도 하는 커피 한잔을 시켜놓고

하루 종일 앉아 있는 경우도 있어서 벽화라는 새로운 용어를 탄생시키기도 했다.

1950년대에 서울거리는 거의 폐허나 다름없었으나 전쟁 중에 들어온 인스턴트 커피의 등장으로 다방만은 여전히 인기를 누리고 있었다.

일반적으로 다방은 안이 밝고, 유리창이 많았으며 한가운데는 드럼통 스토브가 열기를 뿜고 있고,

카운터 앞이나 구석에는 상록수가 한, 두 그루씩 놓여 있었으며 한 스무 개 정도의 테이블이 있었다.

그러나 어떤 다방은 다방다운 시설이 없는 곳도 있어 시골 간이역 대합실 같은 곳도 있었다.

1910-1960년대 다방은 사람들이 자유로이 토론하고 대화를 즐길 수 있는 곳으로,

자신의 사상과 종교, 그리고 유행과 취미에 이르기까지 사회 전반에 걸친 다양한 관심이 표출된 곳이었다.

비록 일제 시대와 6.25전쟁이 주는 암울함이 함께 공존했으나,

다방은 당 시대의 아픔과 허무에 가슴 비빌 데 없던, 살아남은 젊은 문학예술 청년들이 모여 앉아 예술적인 모색을 활발히 추구하던 곳이었다.

, 제대로 클럽 같은 것을 갖지 못한 문인들은 대개 손쉬운 단골다방을 정해 놓고, 한담도 나누고 연락처로 활용하기도 하였던 것이다.

1930년대에는 「날개」의 작가 이상이 주인이었던 <제비>, <>, <무기>, <69>가 그런 역할을 하였고,

부산 피난 시절에는 약속이나 특별한 용무가 없으면서도 언제나 모여들던 문화예술인들의 아지트 노릇을 했던

<밀다원>, <금강>이 있었다.

그리고 해방 후엔 <플라워>라는 다방에 많은 문인들이 드나들며 출판기념회를 갖고 문임 모임도 자주 열었다.

휴전협정으로 포성이 그친 서울거리는 거의 폐허로 가득했지만 다방은 건재했다.

이 중 남대문로 2가 문예빌딩에 위치해 있던 <문예 싸롱>은 문예잡지인 [문예]를 함께 발간하기도 했다.

그 후 1960년대에 들어서면서 명동에 <갈채다방>이 들어선다.

문학을 하는 사람 치고 갈채다방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만큼 60년대만 해도 이 찻집은 문단의 명물이었다.

갈채다방이 다른 다방과 판이하게 달랐던 풍경은,

카운터 탁자에 언제나 증정본 잡지와 원고 청탁서 그리고 출판기념회 초청장 등이 즐비하게 놓여 있어,

경제적으로 궁색했던 예술가들에게 언제나 지적인 풍족 감을 만끽하게 만들어 주었다는 점이다.

한편, 다방은 커피 값 한잔의 수강료로 대학만큼이나 많은 것을 배우는 자리를 마련해주었다.

“세 사람이 모이면 그 안에 스승 한 사람이 있다”는 말도 있고,

“인간은 죽을 때까지 학생”이란 말도 있는 걸 보면,

커피 집 이야말로 썩 좋은 교실역할을 했다.

거기에서 모인 이들은 커피를 배우고, 사랑과 우정, 문학과 철학, 자유와 지성, 정의와 용기를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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