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브리엘 마티유 드 클리유
(GABRIEL MATHIEU DE CLIEU)
커피의 가장 로맨틱한 이야기는 프랑스령 마르티니끄 군도에 파견된 프랑스 해군장교인 가브리엘 마티유 드 클리유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1720년 혹은 1723년경 그는 마르티니끄 군도로 떠나기 전에 파리에서 기념품으로 가져갈 물건을 궁리하다가 자뎅 드 플랑트 식물원의 커피나무를 몰래 갖고 나오는데 성공하였다.
첫 번째 커피 묘목이 죽자 두 번의 항해를 했는지도 모른다.
마침내 클리유는 프랑스 낭트 항구에서 마르티니끄 군도로 항해를 떠났다.
커피나무가 온도유지와 소금기로 인해 죽는 것을 예방하고자 정성을 다해 유리상자에 넣어 갑판에 실었다.
클리유의 일기를 통해 그가 튀니스(튀니지의 수도) 항구에서 약탈의 위협과 거친 폭풍을 어떻게 이겨냈는지를 알 수 있다.
또한 클리유는 배 안에서도 그를 시기 질투한 적(敵)들이 커피나무를 훼손하고, 커피나무를 버리려고 하였지만 그가 커피나무를 지키기 위해 고분 분투한 사실도 기록되어 있었다.
배가 순조롭게 항해하자 식수가 부족했다.
클리유는 자신이 마실 식수까지 사랑하는 마음으로 커피나무에게 부어주었다.
마침내 클리유는 마르티니끄 항에 도착했으며, 프레체어 지역에 가시덤불 울타리를 만들고 커피나무를 심었다.
그리고 커피나무는 노예들의 24시간 감시하에서 성장하여 1726년 감격의 첫 수확을 하였다.
1777년, 마르티니끄 군도에 18,791,680그루의 커피나무가 있었으며, 이 지역의 커피 묘목은 하이티, 산토 도밍고, 구아데로우페 지역으로 보급되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클리유는 커피나무들이 확산되는 기쁨을 보지 못한 채, 1724년 11월30일 88세의 나이로 파리에서 생을 마감하였다.
프랑스는 커피나무를 훔쳤던 그를 용서하고 1918년 마르티니끄의 포트 드 프랑스 식물원에 기념비를 세우고 그의 공로를 치하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