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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시

혼자 있어도 혼자 있는게 아니다.---도종환---



 혼자 있어도 혼자 있는 게 아니다 
아름다운 음악을 듣고 있으면 혼자 있어도 혼자 있는 게 아니다. 노랫소리가 가는 곳을 따라서 나도 문을 열고 숲길로 나선다. 노랫소리의 뒤에 서서 허밍코러스를 넣는 하늬바람과 손을 잡고 나도 콧노래를 부른다. 맑은 소리에 얹혀 울려 나오는 고운 노랫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함께 푸른 하늘을 바라본다. 아름다운 음악을 듣고 있으면 그대가 곁에 있을 때와 똑같이 가슴이 서늘해져온다. 눈을 감고 노랫소리 한가운데로 걸어들어 가면 거기 그대도 이미 들어와 조용히 두 무릎을 안고 앉아 있을 것 같다. 가슴을 적시는 음악과 함께 있는 시간 동안은 혼자 있어도 혼자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강물소리와 함께 있으면 혼자 있어도 혼자 있는 게 아니다. 강물소리에 젖어, 강물에 젖은 발보다 마음이 먼저 흠뻑 젖어 앉아 있으면 그대도 이 물줄기 어디쯤을 그렇게 젖어서 거닐고 있을 것 같다. 찰싹이며 찰싹이며 강 언덕을 건드리고 가는 물결처럼 그대도 그대 마음의 어느 기슭을 그렇게 적시며 있을 것 같다. 씻겨도 씻겨도 씻겨지지 않을 것 같은 아름답고 아픈 추억들을 씻어 내리며 여울물이 굽이쳐 흘러가는 곳에 있으면 그대도 어디선가 이 물소리를 듣고 있을 것 같다. 똑같이 아파하고 힘들어하면서 강가를 거닐다 맑은 물에 얼굴을 씻고 다시 하늘을 올려다 볼 것 같다. 나뭇잎 사이로 별이 총총한 느티나무 아래 앉아 있으면 혼자 있어도 혼자 있는 게 아니다. 어둠이 깊을수록 별은 더욱 은빛으로 반짝이고 나는 그 깜빡거리는 별빛을 보며 눈을 맞춘다. 밤마다 우리를 지켜 주던 별이 오늘도 내 머리 위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마음 든든하다. 내가 별을 올려다보는 이 각도의 반대편 꼭지점에 그대가 있을 것임을 나는 안다. 그대가 어디 있는지 알고 있는 별은 우리를 그렇게 반짝이는 눈빛으로 연결해 주고 있을 것이다. 우수수 우수수 소리를 내며 몸을 떠는 느티나무 이파리 하나 주워들고 거기 내가 그대에게 편지를 쓰면 그대가 별빛에 비추어 내 편지 한 구절 한 구절을 읽고 있을 것 같다. 내가 낮은 목소리로 편지를 읽어 내려가면 그대가 귀를 기울이고 그걸 듣고 있을 것 같다. 아름다운 노래의 강물에 누워 함께 흘러 내려가고 있으면 혼자 있어도 혼자 있는 게 아니다. 가슴을 흥건하게 적시는 강물의 노래에 귀를 담그고 있으면 혼자 있어도 외롭지 않다. 어둠 속에서 별들이 우리를 지켜주고 있는 동안은 혼자 있어도 혼자 있는 게 아니다. - 혼자 있어도 혼자 있는 게 아니다 / 도종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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