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포지교(管鮑之交)
중국 제나라 시절에 관중이라는 정치가가 있었다.
그는 관자(管子)라는 정치, 경제 서적을 저술했는데,
저서에는 제정, 금융, 화폐, 무역, 세제 등 경제 각 분야에 대한 내용이 체계적으로 기술되어 있다.
이 책에서 나온 경제사상은 이후 중국을 이끌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유명하다.
관중에게는 어린 시절부터 알고 지내던 포숙이라는 친구가 있었다.
집안 형편이 어려웠던 관중은 포숙과 함께 장사를 한 적이 있는데,
관중은 수익을 나눌 때 자신이 더 많이 갖는 일이 많았다.
하지만 포숙은 관중의 집안이 가난한 탓이라며 이를 이해했다.
또한 함께 전쟁에 나갔을 때도, 관중이 3번이나 도망을 쳐
사람들의 비난을 받을 때도 포숙은 관중이
늙으신 어머니를 보살피기 위해 그런 것이라며 비겁자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제상에 오른 관중은 '나를 낳은 것은 부모이지만 나를 아는 것은 오직 포숙뿐이다'며
'포숙이야 말로 진정한 친구'라고 말했다.
이렇듯 관중과 포숙의 평생에 걸친 우정에서 나온 고사성어가 바로 관포지교(管鮑之交)다.
(비슷한 의미의 속담으로 '필요할 때 친구가 진정한 친구다'라는 말이 있다. 영어 표현으로는
'A friend in need is a friend indeed.'라고 한다.
[예문] A friend in need is a friend indeed. That's always been my philosophy. 필요할 때 친구가 진정한 친구다. 이것은 항상 나의 철학입니다.
형편이 좋을 때만 친구로 지내는 사람도 있다. 하루는 장자가 아들을 불러 진정한 친구가 몇이나 되냐고 물었다.
아들은 손으로 꼽을 수 없을 만큼 많다고 했다.
이에 장자는 자신이 실수로 살인을 저질렀는데 이를 숨기기 위해 친구의 도움을 받으라고 했다.
아들은 진정한 친구라 생각한 사람들의 집에 시체를 지고 갔지만, 문전박대를 당하게 되었다.
아들은 친구들의 반응에 적잖이 당황했다.
이번에는 장자가 자신의 친구 집을 찾아갔더니, '우선 이리 들어와 정신을 가다듬고 차분하게 처리하세.'라며 받아들였다.
물론 살인은 장자가 아들을 가르치려고 한 설정이었으며, 시체라고 한 것은 갓 잡은 멧돼지였다.
장자의 아들이 친구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은 '실제로 필요할 때는 도움이 안 되는 친구'에 불과했던 것이다.
이에 해당하는 영어 표현으로, fair-weather friend이 있다.
[예문 1] I thought Mike would always stick by me, but when I got into trouble, he turned out to be a fair-weather friend. 마이크는 나랑 항상 같이 할 거라 생각했는데, 내가 곤경에 처하자 그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았다.
[예문 2] The politician has proven to be a fair-weather friend of immigrants' rights. 그 정치인은 이민자들의 권리에 대해서는 (선거 기간처럼) 필요할 때만 우호적이라는 사실이 증명되었다.
ㆍ필요할 때 친구가 진정한 친구다 - A friend in need is a friend indeed. ㆍ실제로 필요할 때는 도움이 안 되는 친구 - fair-weather friend
管鮑之交
管(관) 대롱 / 鮑(포) 절인고기 / 之(지) 어조사 / 交(교) 사귐
자신이 역경(逆境)에 처했을 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친구를 두고 있다면
그러한 친구야 말로 진정한 친구라고 할 것입니다.
교우 관계가 자신의 인생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것은 재론(再論)의 여지가 없을 것입니다.
조선조의 실학자 담헌 홍대용(洪大容)은 교분이 있는 중국 교우(交友)에게 보낸 편지에서
친구라는 것은 서로가 책선(責善: 선행을 하도록 권하는 것)과
보인(輔仁: 서로 도와 인(仁)을 권하는 것)을 해주는 것이라고 정의를 내렸고,
《논어(論語)》에서 공자(孔子)는
'한 해가 추워진 연후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늦게 시든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했듯이
진정한 친구도 역시 어려운 역경에서 그 진가가 발휘되는 것입니다.
진정으로 자신을 이해해주고 어려움을 감싸준 우정 어린 인물로는
단연 중국 춘추시대(春秋時代)의 제(齊)나라 명재상인 관중(管仲)과 포숙(鮑叔)의 관계를 꼽을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 역시 조선조 명종대(明宗代)의 오성과 한음 역시 관중과 포숙에 비교할 수 있는
교분이 두터운 우정 어린 인물이라고 볼 수 있겠지요.
"나를 나아준 분은 부모님이지만 나를 알아준 이는 포숙이다."라는 관중의 표현대로
포숙은 관중을 진정으로 이해해 준 인물이었던 것입니다.
《사기(史記)》〈관안열전(管晏列傳)〉이나 《열자(列子)》〈역명편(力命篇)〉에서
출전을 찾을 수 있는 관포지교 고사의 이야기는 다음과 같습니다.
중국 춘추시대 제(齊)나라에 관중(管仲)과 포숙(鮑叔)은 어릴 적부터 절친한 친구 사이었습니다.
후에 관중은 명재상(名宰相)으로 명성을 얻게 되는데,
그가 명재상이 되기까지는 친구였던 포숙의 공이 지대했습니다.
관중이 말년에 포숙에 대한 칭송의 말을 남겼는데, 그 표현은 다음과 같습니다.
"내가 어릴 적 곤궁할 적에 포숙과 함께 장사를 할 때, 이익의 분배를 내가 포숙보다 더 많이
가져갔는데 포숙은 나를 탐욕스럽다고 여기지 않은 것은
내가 가난하다는 것을 알아주었기 때문이었고,
벼슬길에 올라 많은 실수로 사람들은 나를 어리석다고 했지만 포숙은 나를 무능하다 하지 않고
때를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알아주었다.
또한 내가 포숙아 와 함께 전쟁터에 나갔을 때,
내가 세 번이나 도망을 치자 사람들은 나를 비겁하다고 질책했지만 포숙아 는
내가 집에 연로한 어머님이 게시기 때문이라고 알아주었고,
또 나와 포숙아가 제나라의 두 공자인 규(糾)와 소백(小伯)의 사부가 되었다가
내란에서 공자 규를 모시던 내가 공자 소백에게 패하여 참수형의 위기에서
포숙아의 설득으로 목숨을 구하고 오히려 재상의 자리까지 나에게 물려주어
내가 이 자리까지 올 수 있도록 나를 알아주었다.
결국 나를 나아주신 분은 부모님이지만 나를 진정으로 알아준 이는 포숙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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